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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비개발 도서들 짧은 리뷰(4)

 

최근에 읽었던 가상 면접으로 배우는 어쩌고 저쩌고 대규모 시스템 설계.. 2탄이 나왔다고 한다.

빨리 사서 읽어야겠군..

좋은 책이니 님들도 어서 읽으십시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저
평점 5.0/5.0

한줄평 : 허망함의 무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다.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굳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그 외에 세계가 3차원인지 아닌지, 이성의 범주가 아홉 개인지 열두 개인지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런 문제들은 장난이다.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15p)

평화를 얻으려면 앎과 삶을 거부할 수밖에 없고, 뭔가 손에 잡으려 하면 완강한 거부의 벽에 부딪히고 마는 이런 조건들.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역설을 야기하는 것이다.
무사태평하고 무기력한 마음 또는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포기에서 비롯되는 이 치명적인 평화를 벗어날 수가 없다.
(38p)

“만약 인간에게 영원한 의식이 없다면, 만물의 밑바닥에는 캄캄한 정염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대하거나 사소한 그 모든것을 생산해 내는 야생의 들끓는 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바닥없는 허무가 사물들 속에 숨겨져 있다면, 삶이란 절망이 아니고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절규는 부조리한 인간을 멈춰 세울 수는 없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64p)

실존적인 사람들에게는 부정이 곧 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신은 인간의 이성을 부정할 때만 존재한다.
(65p)

자살은 하나의 오해이다. 부조리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걸 소진하고 자기 자신까지 다 소진하는 것 뿐이다.
부조리는 인간의 가장 극한의 긴장이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유지하는 긴장이다.
왜냐하면 그는 매일매일 이 같은 의식과 반항 속에서 도전이라는 자신의 유일한 진리를 증명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84p)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알고 있다. 
하나는, 우리는 자유롭지 않고 전지전능한 신이 악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는 자유롭고 책임도 지지만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86p)

부조리와 맞닥뜨리기 이전의 일상적 인간은 숱한 목표, 미래나 변명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기회를 가늠해보고, 미래와 은퇴 혹은 자식들의 직업 따위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자신의 인생이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자유로운 듯 행동하는데, 심지어 세상만사가 이 자유와는 어긋나기만 하는데도 그렇게 행동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 마치 모든 것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나의 태도, 이 모든 것들은 언제든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부조리함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부정된다.
내일을 생각하고, 자기 목표를 설정하며, 이것보다 저것을 더 좋아하는 이 모든 행위들은 자유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87p)

분명히 말하자면, 내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만의 고유한 진리와 존재 방식 혹은 창작 방식을 염두에 두면 둘수록, 급기야 내가 내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로써 내 삶에 의미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할수록, 나는 스스로에게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내 삶을 가두게 된다.
내게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며, 인간의 자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신과 마음의 그 숱한 공무원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89p)

우체국 수습사원과 정복자는 둘 다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동등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경험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도 있고, 피해를 주는 경험도 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은 그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
즉, 한 인간이 실패할 경우 그 조건을 비판하는 대신 그 인간 자신을 비판해야 한다.
(104p)

인간을 부추기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은 모두 희망이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따라서 거짓됨이 없는 유일한 사고는 아무런 결실을 요구하지 않는 불모의 사고이다.
(105p)

고대인들, 심지어 우리의 기계 시대에 이르기 전까지 가장 최근의 사람들에게도 사회의 미덕과 개인의 미덕을 비교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고, 어느 쪽이 다른 쪽에 봉사해야 하는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인간 존재는 누군가에게 봉사하기 위해, 또는 봉사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판단 착오,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에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 착오 때문이었다.
(132p)

관조와 행동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 오게 마련이다. 이것을 두고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분열의 고통은 끔찍하다. 하지만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중간이란 없다.
신이냐 시간이냐, 십자가냐 칼이냐가 있을 뿐이다.
이 세계에 이런 분란을 초월하는 보다 높은 의미가 있거나, 아니면 이러한 분란 외에는 진실이라곤 없거나 둘 중 하나이다.
시간과 더불어 살아가다가 시간과 함께 죽거나, 아니면 보다 위대한 삶을 위해 시간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타협할 수도 있다는 것, 당대를 살아가며 영원을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런 것을 수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혐오한다. 나는 전부 아니면 무를 원한다.
(134p)

“자기의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양처럼 순한 마음을 완벽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고 해서, 이 지상과 천상에서 어떤 특권을 누려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제아무리 잘되어 봐야 뿔 여러거 개 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어린 양에 불과한 것이다. 설령 지나치게 교만하지도 않고, 심판관인 양하는 태도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142p)

예술 작품은 정신의 병에 탈출구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 작품은 한 인간의 사유 전체로 반사되는 이 병의 징후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예술 작품은 정신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스스로에게서 벗어나게 하여 타자들과 대면시킨다.
정신이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출구 없는 길을 명확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150p)

예술 작품은 지성의 드라마를 구현해 내지만, 그 지성을 간접적으로 증명할 뿐이다.
부조리한 작품은 이러한 한계를 의식하고 있는 예술가와, 구체적인 것은 그 자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예술을 요구한다.
이러한 작품은 삶의 목적도, 의미도, 위안도 될 수 없다. 창조를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조리한 창조자는 자기 작품에 집착하지 않는다.
(153p)

신이 된다는 것은 단지 이 지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불멸의 어떤 존재를 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이 고통스러운 독립의 귀결점을 모두 이끌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은 신에게 달려 있고, 우리는 신의 의지에 맞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니체의 경우처럼 키릴로프에게도 신을 죽인다는 것은 자기가 신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복음서가 말하는 영원한 삶을 지상에서 실현시키는 것이다.
(167p)

경향 소설, 즉 무엇인가를 증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보다 가장 혐오스러운 작품은, 대개의 경우 스스로 흡족해하는 어떤 사고에서 비롯된다.
자기가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진실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작동되는 것은 관념이고, 관념은 사고의 정반대이다.
이런 창조자들은 수치스러운 창조자들이다.
(179p)

만약 이 신화가 비극이라면, 그것은 주인공이 의식적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이번에는 성공하리라는 희망이 그를 지탱해 준다면, 과연 그가 고통스러워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늘날 노동자는 평생에 걸쳐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한다. 이 운명도 시지프보다 덜 부조리하지 않다.
하지만 이 노동자는 그가 의식을 되찾는 몇몇 드문 순간에만 비극적이다.
(188p)

인간의 마음은, 유감스럽게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만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행복 역시 그 나름대로 이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행복도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이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그래도 행복의 장점을 자기 능력 덕으로 돌린다.
(200p)

시지프의 얼굴에서 카뮈가 보고자 하는 것은 고통을 외부에서 주어진 형벌이 아닌 “원래 자기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일 때 생겨나는 일종의 “말 없는 기쁨”이다.
바위가 이번에는 정상에 꼿꼿이 자리 잡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고통을 상쇄시키지 않는 것, 바위는 또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 하지만 떨어지는 바위를 똑바로 주시한 후 또다시 천천히 고통을 준비하는 것, 이것은 자기 운명을 바라보며 확실히 의식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통찰은 과연 그의 고뇌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그의 반항이자 열정이다. 시지프는 자기 운명을 의식하고 그것과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 비극적이지만, 그 운명을 “자기 소관 하에” 두게 됨으로써 이제는 형벌보다 우월해진다.
형벌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운명은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지만, 그 정체를 똑바로 인식하게 되면서 고통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240p)

 

 

 

 

스토너
존 윌리엄스 저
5.0/5.0

한줄평 : 눈물 한 방울 흘렸다. 슬퍼서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윌리엄 스토너 앞에 놓인 장래는 밝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와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장래는 곧 웅장한 대학 도서관이었다. 언젠가 도서관에 새로운 건물들이 증축될 수도 있고, 새로운 책들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낡은 책들이 치워질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의 진정한 본질은 근본적으로 불변이었다.
그는 몸을 바치기로 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곳에서 자신의 장래를 보았다. 장래에 자신이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장래 그 자체가 변화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변화의 도구라고 보았다.
(38p)

전쟁선포 후 처음 며칠 동안 스토너도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캠퍼스 내의 사람들 대부분을 사로잡은 혼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나 강사들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어도, 사실 그는 전쟁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쟁이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자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엄청난 무심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전쟁 때문에 대학의 일들이 중단된 것에 화가 났다. 자신의 내면에서 강렬한 애국심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또한 독일인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50p)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강렬한 시선으로 스토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군대에 가더라도, 제발 부탁이니 하느님이나 조국이나 친애하는 미주리 대학을 위해 가지는 말게. 자네 자신을 위해서 가는 거야.”
(52p)

“잘 모르겠지만, 아까 예배 중에 나는 계속 데이브 매스터스를 생각했네. 프랑스에서 죽은 데이브와 자기 책상에 앉아 죽은 채 이틀을 보낸 슬론. 두 사람의 죽음이 같은 종류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슬론하고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아마 좋은 사람이었겠지. 적어도 내가 듣기로는 그렇다고 했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교수를 몰색하고, 새로운 학과장도 찾아봐야 해. 모든 게 그냥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 것만 같아. 도대체 이것이 다 뭔가하는 생각이 드네.”
“맞아.” 윌리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고든 핀치에게 커다란 호감을 느꼈다. 그는 차에서 내려 고든의 차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또 다른 한 부분이 거의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천천히 그에게서 멀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128p)

그는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이 황량하고, 나무 하나 없는 작은 땅으로 시선을 돌려 평평한 땅 너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태어난 집,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을 보낸 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해마다 땅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했다.
땅은 옛날과 다름없었다. 아니, 그때보다 조금 더 척박해지고, 소출도 조금 더 인색해진 것 같았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즐거움이 없는 노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들의 의지는 꺾이고, 머리는 멍해졌다. 이제 두 분은 평생을 바친 땅 속에 누워 있었다.
땅은 앞으로 서서히 두 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습기와 부패의 기운이 두 분의 시신이 담긴 소나무 상자를 서서히 침범해서 두 분의 몸을 건드리다가, 마침내 두 분의 마지막 흔적까지 모조리 먹어치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분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을 바쳤던 이 고집스러운 땅의 무의미한 일부가 될 것이다.
(153p)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252p)

스토너는 갑작스레 감정을 터뜨린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264p)

“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 안 그래요?”
(278p)

스토너는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며 슬픔을 느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만을 보여주었다. 죄책감이라는 편안한 사치품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타고난 본성과 이디스와의 생활이라는 조건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깨달음이 죄책감보다 훨씬 더 슬픔을 부추겼고, 딸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332p)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절망을 거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350p)

방금 그녀를 만졌던 것처럼 손이 저릿거렸다. 그 상실감, 그가 너무나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그 상실감이 쏟아져 나와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의지를 넘어 그 흐름에 휩쓸리는 자신을 내버려두었다. 자신을 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기억을 향해 미소 짓는 것처럼.
이제 자신은 예순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 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있어.
(353p)

“아버지가 가엾어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는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그는 잠시 생각해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랬지. 하지만 나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와 제가… 우리 둘 다 아버지를 실망시켰죠?”
그는 딸을 만지려는 듯이 손을 들어올렸다. “아냐, 그렇지 않아.” 그가 흐릿한 열정을 담아 말했다. “넌 절대로…” 그는 더 말을 잇고 싶었다. 딸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눈을 감자 정신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갖가지 영상들이 머릿속에서 북적거리다가 화면이 바뀌는 것처럼 바뀌었다. 클레어몬트의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이디스가 보였다. 파란 드레스와 가느다란 손가락과 부드럽게 미소 짓던 하얗고 섬세한 얼굴. 그리고 매 순간이 달콤하고 놀랍다는 듯 열성을 띠던 연한 푸른색 눈. “네 어머니는…” 그가 말했다. “네 어머니가 항상 그렇지는…”
그녀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 속에서 한때 소녀였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옛날부터 항상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382p)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388p)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391p)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저
4.5/5.0

한줄평 : 난 타인의 자존심을 내 자존심의 반 만큼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지극히 당연한 진리들이지만 한번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누군가에게 수십 년에 걸쳐 죽을 때까지 마음에 사무치는 분노를 일으키고 싶다면, 그저 따끔한 비난을 퍼부으면 된다. 그 비난이 정당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가 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존심과 허영으로 움직이는 존재다.
(71p)

우리는 어떤 특정한 문제에 몰두할 때를 제외하면 대개 자기 시간의 95%를 자신에 관해 생각하는 데 소비한다. 만약 우리가 이제부터 자신에 관한 생각을 잠시 멈추가 타인의 장점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알아챌 정도로 저속하고 거짓된 아첨에 기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운다.”
(91p)

먼저 상대의 마음에 간절한 열망을 일으켜야 한다. 이 일을 해내는 사람은 세상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외로운 길을 걸을 것이다.
(110p)

아주 오래전, 예수가 태어나기 100년도 전에 푸블릴리우스 시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135p)

행동은 감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행동과 감정은 함께 일어난다. 우리는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행동을 조절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감정을 간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쾌활함을 되찾는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방법은 이미 쾌활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142p)

사람들이 당신을 멀리하고 뒤에서 비웃고 욕하게 하고 싶다면, 여기에 그 방법이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길게 듣지 마라. 끊임없이 당신의 이야기만 해라.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대가 말하고 있어도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대가 말하고 있어도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어차피 그 사람은 당신만큼 똑똑하지 않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듣느라 시간을 낭비하는가? 상대의 말을 끊고 도중에 끼어들면 된다.
(173p)

나는 언젠가 공개석상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에게서 뭘 바란 건가요?”
그 사람에게서 뭘 바랐냐고!!! 내가 뭘 바랐냐고!!!
우리가 그토록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는 작은 행복을 나누거나 진심 어린 칭찬조차 전할 수 없다면,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콩알보다 작다면,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183p)

블라니 스톤에 입을 맞추기 전까지는 절대로 결혼하지 마라. 결혼하기 전이라면 여자에게 칭찬하는 것은 남자들에게 선택의 문제이다. 하지만 결혼한 후에는 무탈한 결혼 생활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결혼 생활은 솔직함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수완이 필요한 영역이다.
매일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면, 아내의 살림살이에 간섭하거나 시어머니와의 악의적인 비교를 하지 마라. 오히려 아내가 얼마나 가정일에 헌신적인지 칭찬하고, 비너스와 미네르바 그리고 메리 앤의 매력을 모두 합친 유일한 여성과 결혼한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공개적으로 표현하라.
스테이크가 가죽 같고 빵이 새카맣게 타더라도 불평하지 마라. 그저 평소에는 완벽한데, 오늘은 평소만큼은 아닌 것 같다고만 말하라. 그러면 아내는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엌 화로 앞에서 온몸을 불태울 것이다.
(199p)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뿐이다.
(214p)

절대 “내가 이렇게 저렇게 증명해 보이겠다.”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이는 좋지 않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다.
“내가 당신보다 똑똑하니, 한두 마디 해주고 당신의 생각을 바꿔 놓겠어.”
그런 말은 상대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작하기도 전에 당신과 싸우고 싶게 만들 뿐이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왜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가? 왜 스스로 불리해지는가?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다면,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교묘하고 미묘하게 행동해야 한다.
“사람은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가르쳐야 한다. 모르는 것도 잊은 것처럼 느끼도록 제시해야 한다.”
(216p)

우리는 때떄로 별다른 저항이나 격한 감정 없이 생각을 바꾸기도 하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말을 들으면 그 지적에 분개하고 생각을 더 굳힌다.
우리는 신념을 형성하는 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신경하지만, 누군가가 그 신념을 빼앗으려 하면 신념에 대한 잘못된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신념 자체가 아니라 위협받는 우리의 자존심이다.
(220p)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 대한 불만과 악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세상의 그 어떤 논리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다.
야단치는 부모, 고압적인 상사, 권위적인 남편, 잔소리하는 아내들은 깨달아야 한다.
원래 사람이란 자기 생각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강요나 압박으로는 우리 의견에 동의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상냥하고 다정하게 다가간다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245p)

프랑스의 철학자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했다.
“적을 만들려거든 친구를 이기고, 친구를 만들려거든 친구가 이기게 하라.”
왜 이 말이 진리일까? 친구가 이기도록 하면 그 친구는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가 친구를 이기면 그 친구는 열등감과 시기심, 질투를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속담에는 “Die reinste Freude ist die 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순수한 기쁨은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불행에 빠졌을 때 느끼는 사악한 기쁨이다.”
(271p)

논쟁을 멈추고, 반감을 없애고, 호의를 일으키며, 상대가 귀 기울이게 하는 마법의 말을 알고 싶지 않은가?
그런가? 좋다. 여기 알려 주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시작하라.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가 당신이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똑같이 느꼈을 겁니다.”
(290p)

찰스 슈왑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일이 되게 하려면 경쟁심을 자극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지저분하게 경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탁월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말하는 겁니다.”
탁월해지고 싶은 욕구! 도전! 투쟁심! 이것이야말로 패기 넘치는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방법이다.
(316p)

요컨대 누군가를 어떤 방면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그 특정 방면의 자질이 이미 그 사람의 장점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덕이 없더라도 덕이 있는 것처럼 여겨라”
즉, 상대방이 개발했으면 하는 장점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공개적으로도 그렇게 대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게 부응할만한 좋은 평판을 주어라. 그러면 상대방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353p)

사랑을 파괴하기 위해 지옥의 악마들이 발명한 가장 확실하고 치명적인 수단이 바로 잔소리다.
잔소리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 킹코브라의 독처럼 항상 파괴적이고, 항상 치명적이다.
(389p)

잔소리를 할 만했으니 했을거라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다. 문제는 잔소리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느냐 또는 문제를 끊임없이 악화시켰느냐 하는 점이다.
(392p)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상대가 행복을 찾는 특유의 방식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단, 그 방식이 우리의 방식을 폭력으로 방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400p)

놀랍게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 비열하고, 모욕적이며,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우리의 가족뿐이다.
(41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