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
평점: 4.0/5.0
감상평
2부까지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3부에서 머리가 띵해진다.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다.
우리는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사람을 구경만 하는 것은 더 힘들어서 그래요. 더구나 노인이 일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이에요.”
할머니가 비웃었다.
“개자식들! 내가 불쌍하게 보인다 이 말이구나?”
“아니에요, 할머니. 우리는 다만 우리 자신이 부끄러웠을 뿐이에요.”
(20p)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하도록 행동하고는, 우리가 정말 끄덕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같은 내 새끼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 난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난 너희만 사랑할 거야.. 영원히.. 너희는 내 인생의 전부야..”
반복하다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 말들이 주던 고통도 줄어들었다.
(34p)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43p)
“난 너희들이 주는 과일이나 생선이나 우유 따윈 필요 없어! 그런 건 다 내가 훔치면 돼.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들이 날 좋아해주는 거야.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거든. 우리 엄마조차도. 하지만 뭐, 나 역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니까. 우리 엄마도 너희들도! 나는 너희들을 미워해!”
(48p)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사과랑 과자, 초콜릿, 동전 등을 길가 풀숲에 던져버렸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51p)
장님 역은 단지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돌리면 그만이고, 귀머거리 역은 온갖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57p)
“아저씨도 아시다시피, 우는 건 소용없는 짓이에요. 우리는 절대로 울지 않아요. 우리는 아직 아저씨처럼 어른이 아니라구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 말이 옳아. 미안하다. 이제 안 그럴게. 단지 너무 지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을 뿐이야.”
(60p)
“너희들은 왜 진작 날 도와주지 않았니?”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덩치 큰 세 녀석이 덤비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니?”
“네 물통을 놈들 대가리에 던져버리든지, 손톱으로 얼굴을 온통 할퀴어놓든지, 불알을 발로 걷어차든지, 그도 저도 안 되면, 고함을 치고, 울부짖기라도 해야지, 아니면 아예 달아났다가 나중에 다시 오든가.”
(75p)
신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십계명’도 알겠구나. 너희들은 그걸 지키니?”
“아니요, 신부님. 우리는 지키지 않아요.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거기에는 ‘살생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죽이기를 일삼고 있어요.”
(110p)
“너희는 너무 예민해. 너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희가 본 것을 모두 잊어버리는 거야.”
“우리는 영원히 아무것도 잊지 못할 거예요.”
(143p)
“우리는 부검이 두려운 게 아니에요, 할머니. 다만 할머니가 다시 회복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니다. 난 다시 일어나지 못해. 그건 내가 잘 알아. 그러니까, 가능한 한 빨리 끝장을 내는 게 좋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울기 시작했다.
“너희는 전신마비가 어떤 건지 모른다. 뭐든지 다 보이고, 들리는데, 난 꼼짝도 할 수가 없는 거야. 나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너희는 배은망덕한 놈들이야, 내가 헛수고를 했지.”
우리가 말했다.
“그만 우세요, 할머니. 소원대로 해드리겠어요, 정말 그걸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218p)
“아이 어깨가 기형인가봐.”
“응. 다리도 이상해,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군.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어. 난 임신 사실을 숨기려고 허리를 졸라매고 다녔거든. 그래서 불구가 됐어. 아이를 물에 던져버릴 용기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루카스는 수건으로 감싼 아이를 팔에 안고, 쭈글쭈글한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마, 야스민.”
그녀가 말했다.
“얘는 불행해질 거야.”
“너도 불행해, 하지만 넌 불구는 아니야. 얘는 어쩌면 너보다, 또는 그 누구보다도 더 불행하지 않을지 몰라.”
(272p)
“죽은 사람들하고 떠난 사람들하고는 한 가지 차이밖에 없어, 그렇지? 죽지 않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루카스가 말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없는 동안 그들이 죽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
(339p)
“아니, 그게 다는 아니야.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는 그 여자를 사랑하나?”
루카스가 문을 열었다.
“저는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그 뜻을 모르는 것 아닐까요? 당신이 하는 그런 질문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질문이 자네 인생에서 가장 흔한 질문이 아니겠어? 때로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걸.”
“그러면, 당신은요? 당신은 그런 질문에 한번 답해보세요. 당시닝 연설을 하면 청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더군요. 당신이 하는 말들을 당신은 진심으로 다 믿습니까?”
“난 내 말들을 믿어야 하네.”
“하지만 정말 마음 속 깊이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그건 나도 모르지. 나에겐 그 정도의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다네. 난 어려서부터 두려움에 시달려왔어.”
(347p)
“오늘 편지 한 통을 받았어. 공문이야. 저기, 내 책상 위에 있어, 읽어바도 돼. 거기에는 토마스의 복권을 선언하고 있어. 그가 무죄라는 거지. 난, 물론, 그의 무죄를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어.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 ‘당신 남편은 무죄입니다. 우리는 그를 실수로 죽였습니다. 우리는 실수로 몇몇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지만, 이제 질서가 회복되었고, 우리는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더 이상 그런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들은 살인을 하고, 복권을 시키고, 사과를 하고 있어. 토마스는 이미 죽었는데! 그들이 그를 되살려낼 수 있을까? 그들이 백발이 된 내 머리를 다시 까맣게 만들 수 있을까? 미쳐버릴 것 같은 불면의 밤들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348p)
클라라는 루카스가 옷 입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스민은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떠난 거야.”
“난 그녀가 어려울 때 도와준 것뿐인 걸요. 난 그녀에게 아무런 약속도 한 적이 없어요.”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지, 당신은 내게 아무런 약속도 안 했어.”
(351p)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362p)
“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 마련이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378p)
“마티아스에게는 잘된 일이다. 그는 영원히 초등학교 일 학년생이고,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루카스는 노트를 덮고, 집을 나와서, 다시 공동묘지로 갔다. 그리고 아이의 묘지 위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에 불면증 환자가 그를 깨우러 왔다.
“가야 해, 루카스. 서점을 열어야지.”
“그래야죠, 미카엘 씨.”
(442p)
행복한 죽음
알베르 카뮈 저
3.5/5.0
감상평
읽어보면 왜 발표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소설.. 카뮈 이름을 기대하고 읽으면 실망할 수 있다.
전체 이야기를 보자면 다소 난잡하지만 이방인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음.
“오직 행복만이 비극적이란 걸 알아두세요. 메르소. 당신은 순수한 사람이니 그걸 잊지 마세요.”
(66p)
그러고는 사진을 내밀면서 쉬엄쉬엄 말했다. “어머니를 사랑했어요.”
메르소는 그 말을, ‘어머니는 나를 사랑했어요.’로 알아들었다.
“그런데 돌아가셨어요.”라고 하는 말은 ‘나는 이제 혼자예요’로 알아들었다.
(73p)
“차라리 그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없지 않아 있어. 하지만 때로는 자살하는 것보다도 그냥 살아가는 데 더많은 용기가 필요해.”
(74p)
그의 모든 사랑의 역사란, 사실은 최초의 놀라움을 어떤 확신으로 바꾸고 또 그의 겸손을 허영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서 사랑했던 것은 그들이 함께 영화관에 나타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리던 저녁이나 그녀를 남들에게 소개하는 순간들이었다. 그가 그녀에게서 사랑한 것은 자신의 힘과 삶의 야망이었다. 그녀의 육체 전체에 대한 욕망 자체와 깊은 애착도 어쩌면 유달리 아름다운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지배하여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그 최초의 놀라움에서 온 것이리라.
(108p)
한가함이란 오직 범인에게만 치명적인 것이다.
(109p)
그때서야 메르소는 빈을 출발한 후 단 한 번도 자신이 자그뢰스를 죽인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린이나 천재 또는 죄 없는 인간만이 갖춘 망각의 자질을 그 자신에게서 발견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그는 마침내 자신이 행복을 위해 태어난 인간임을 깨달았다.
(111p)
커피가 나올 때쯤 엘리안은 용기를 내어 사랑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 자기는 사랑한다면 걸혼할 거라는 의견이다. 카트린이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섹스라고 말하자, 엘리안은 그같은 유물론적인 주장에 놀라 어쩔 줄 몰라한다. 실리주의자 로즈는, 만일 ‘그 경험의 결과 불행히도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지만 않는다면’ 그 의견에 동조하겠다고 말한다.
(125p)
그럴 때 메르소는 뤼시엔의 침묵과 굳어 있는 얼굴 표정을 의식했다. 그년느 필경 지적인 여자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기뻐했다. 정신이 깃들이지 않은 아름다움에는 어떤 신성한 데가 있는 법인데 메르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 점에 민감했다.
(129p)
“왜 떠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이곳 생활이 행복하다면서.”
카트린이 그에게 말했다.
“카트린, 여기 계속 있다가는 사랑을 받을 위험이 있거든. 그렇게 되면 난 행복하지 못하게 돼.”
(139p)
“카트린,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돼. 너는 내면에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어. 무엇보다 가장 고귀한 것으로, 행복의 감각을 가졌어. 오로지 한 남자에게서만 삶을 기대해서는 안 돼. 그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너 자신에게서 삶을 기대해야 해.”
(140p)
”내 말을 믿어줘. 커다란 고통도, 커다란 후회도, 커다란 추억도 없어. 모든 것이 다, 대단한 사랑까지도 결국은 잊히는 거야. 그게 바로 삶에서 슬프면서도 우리를 열광시키는 점이야. 다만 사물을 보는 일정한 시각만이 있을 뿐이고 그 시각이 때로 나타나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사랑과 불행한 정열을 겪는 것이 좋은 거야. 그러한 것은 적어도 우리를 짓누르는 이유 없는 절망에 대한 알리바이 구실을 해주거든.“
(147p)
사람들이 자신의 변화는 그렇게 잘 알면서 친구들에 대해서는 처음 한 번 마음속에 간직해둔 이미지를 맹목적으로 고집하는 것이 그에겐 놀랍기만 했다. 그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과거의 그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마치 개의 성미가 변화하지 않듯이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개나 마찬가지였다.
(149p)
“비꼬지 마. 언젠가는 그런 식으로 끝날 줄 알고 있었다구.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었어. 난 당신 말대로 철없는 계집애일 뿐이었고. 일이 닥쳤을 때는 물론 미치도록 화가 났었지. 하지만 결국 네가 불행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어. 뭐 그런 걸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참 이상해. 우리 둘 사이의 일이 처음으로 슬프면서도 동시에 기쁘게 느껴지는 거 있지.“
(150p)
그에게도 역시 다시 시작하는 것, 떠나감, 그리고 새로운 생활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나태한 자들과 무력한 자들의 정신 속에서만 행복이 그런 것에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행복은 선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그 선택 안에서는 어떤 신중하고 냉정한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포기의 의지가 아니라 행복의 의지로서’라던 자그뢰스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152p)
그는 초인간적인 행복을 꿈꾸지 않듯이 하루하루가 그리는 곡선을 초월하는 영원은 엿보려 하지 않았다. 행복이란 인간적인 것이고 영원이란 일상적인 것이다. 요는 하루하루의 리듬을 우리의 희망이 그리는 곡선에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하루하루의 리듬에 순응하도록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예술에 있어서는 적절한 지점에서 정지할 줄 알아야 하고, 조각작품을 창조할 때는 더 이상 손질을 해서는 안되는 순간이 늘 찾아오는 것이며, 또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통찰력이 주는 가장 섬세한 역량보다도 무심의 의지가 항상 예술가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행복 속에서 삶을 완성하려면 최소한의 무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 무심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노력으로 획득해야 한다.
(156p)
“카트린, 행복에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든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해야한다든가 하는 조건이 있다고 믿는 건 잘못이야. 중요한 건 말이지, 다만 행복의 의지이고 언제나 뚜렷하게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는 거야. 그 나머지 것들, 여자, 예술작품, 또는 속세의 출세 등은 구실에 지나지 않아. 우리가 수를 놓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캔버스인 거야.”
(165p)
“이 지방이 나한테 좋진 않아, 클레르. 하지만 난 이곳에서 행복해. 이곳과 일치되는 느낌이 들거든.”
“완전하게,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서 그래야할 것 같은데요.”
“더 혹은 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냥 행복한 것뿐이지. 죽음도 그건 막을 수 없어. 죽음은 이 경우 행복이 맞는 돌발사라고 할 수 있어.”
(168p)
길에 혼자 남은 메르소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해방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고독과 이어져 있음을 느꼈기 때문에 오늘에야 비로소 그의 고독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고독을 받아들였다는 것, 그리고 이제부터 스스로의 앞날의 주인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인하여 그의 마음속에는 모든 영광에 부수되는 서글픔이 가득 차올랐다.
(174p)
메르소가 느끼고 있는 이 돌연한 오한의 떨림을 통하여 몸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이미 수없는 희열을 가져다 주었던 저 공모관계를 속에서 나타내 보이는 거싱었다. 그러한 이유만으로 메르소는 오한을 하나의 희열로 받아들였다. 의식한다는 것, 그것은 기만하거나 비겁해지지 않은 채 자신과 일 대 일로 자기 육체와 대면하여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내들 사이의 문제였다. 아무것도, 사랑도 장식도 없이, 오직 행복과 고독의 끝없는 사막이 있을 뿐이었다.
(191p)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저
평점 3.0/5.0
감상평
읽기 전 ->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글을 더 잘 쓸 수 있겠지?
읽은 후 -> 내 글은 쓰레기야
이제껏 수많은 저자들의 문장을 다듬어 왔지만, 내가 문장을 다듬을 때 염두에 두는 원칙이라고는,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 뿐이다. 나머지는 알지 못한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9p)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에 쓰인 바로 그 ‘-적’이다. ‘적적적’하는 게 영 보기 싫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다 빼 버릴 수도 없다. 우리말에 원래 없는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원래’를 따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서인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말이라면 ‘원래 없다’는 말만큼이나 이상한 말이 또 있겠는가. 말이 무슨 화석이 아닌 다음에야.
(19p)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102p)
“피곤한 일이죠. 미세한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동물의 세계에선 포식자가 아니라 주로 잡아먹히는 초식 동물의 몫이잖아요. 인간 세계에서는 ‘을’들이 그러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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